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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놈 입니다 결혼해서 가정이 있었지만 처가의 등살에 못견뎌 한눈을 팔았고 다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와중에 사업은 망했고 빚은 저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새로 만난 사람도 저와 비슷한 아픔이 있는 사람이었고 아직도 이혼 소송 중입니다. 악플? 당연하다고 생각 합니다. 저는 삶에서 도망을 쳤고 모든 빚을 제가 떠안고 10년 안에 위자료 5천만원을 주겠다 약속하고 공중까지 받고나서 이혼했습니다. 지금 저랑 살고 있는 아내는 상대방의 일방적인 반대로 아직도 진행중이구요. 다 접고 지방으로 둘이 내려올 때는





하네요. 긴급 생활지원자금인가 하는것도 3개월간 받을 수 있게 해준답니다. 이곳은 아직 도시가스도 안되는 곳이라 화목보일러, 연탄보일러,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는데 겨울 연료비도 지원해준다네요. 한달에 기름 한드럼을 넘게 쓰는데 아이때문에 더 아껴서 사용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답답했었는데 다행입니다. 집에 티비도 없고 5년전에 출시된 휴대폰을 선불폰으로 사용하고 당장 오늘 내가 벌지 않으면 우리는 굶어야 하고 아이는 자라는데 대한민국은 내가 바라는 방법으로는 국민으로 받아주지 않고 그런 상황이지만... 그래도 우리 얘기에 눈물 흘려주시고 진심으로 안타까워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일찍 돌아가시고 44살에 홀로 되시어 할머님에 2남 2녀 참 어렵게 키웠습니다. 눈물 날 정도로.... 올해 81살, 진짜 여기저기 안아프신데가 없는 분입니다. 그런분에게 아버님이 받을 수 있었던 보훈 혜택을 승계해 달라고... 안되면 반만이라도 달라고.... 그것도 못하면 일부 지방 자치(이천, 광명, 세종, 동두천, 홍천.... )에서 실시하는 조례처럼 배우자에게 월 5만원의 수당을 달라고.... 그것도 국가가 못하면 한의원 침 한방이라도 무료로 놔주는 보훈 혜택이라도 달라고.... 청와대 청원, 문재인





걱정하시는거 당연해요 하지만 전 아이로 복수할 생각없어요 진짜예요 믿으실진 모르겠지만 정말이예요 전 아이가 아빠의 존재라도 알았으면 해서 호적을 말한건데 오해의 여지가 다분했고 또 감정적인 상태였기에 그리 좋게 말을 하지못한것도 사실이예요 이에 불편하셨다면 고개숙이고 사과드리겠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들거고 아이키우는것도 정말 힘들건데 21살에 친구들이 꾸미고 공부할때 아이가 힘들게 하면 원망하지 않을수있겠냐 남편있고 가정꾸려서 낳은사람들도 힘들어하는게 육아다.. 네 육아 힘든것 알아요 가정사에 대해 다 말하긴 힘들지만 제가 초6때 친구 어머니집에 있던 어린아이 둘 2년동안 키웠어요 잠시 보살핀건 너가 키운게 아니라고 하셨지만 뭐라고





기분으로 정말 그냥 마땅히 털어 놓을곳은 없고 하소연 삼아 익명의 힘을 빌어 작성한 글 하나로 아빠가 고통을 받고 계십니다 아주 조금의 실수에도 컴플레인이 누적 되는 상황이고 의도적이라 말씀 드리기에는 증거가 없지만 택배를 착불로 시키신후 착불비를 안주시는 고객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로인해 아빠가 착불비 안내 문자를 다시 보내시면 그걸 또 꼬투리 잡으셔서 아빠에게 무례한 언행을 하시며 마지막에는 꼭 컴플레인을 걸겠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리십니다 이뿐만아니라 자동으로



관심이 있더라구요 남편은 이번달만 제가아는것만 카드빚이 1500만원 이상 되는데 저 모르게 지금까지 이렇게 돈을 막 쓰고 비트코인도 하고 살았구요 저는 아직 어린 다섯살남아 키우고 있는데 가정주부고 이혼하면 직장 다녀야 하는 상황인데 우선 소송에서 재산분할하게되면 집을 친정에서 해주신 거라 남편 기여도를 따져도 약 20프로 가져갈수 있다는데 남편이





아이가 학교에서 요즘 한국 근대사와 민주주의에 대해 배우고 있기에 더욱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이들이 잘 견뎌주어 다음 일정을 위해 자리를 떠날 때까지 무탈히 잘 있다가 돌아왔습니다. 주차장에 돌아와 차를 가지고 이동하는 길에 달리는 차 안에서 불꽃 축제의 아름다운 불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 그저 그런 성적대로 지방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고 , 군대도 남는 것 없이 시간만 때우며 흘려보냈습니다 . 지방 하류 대학이 대부분 그러하듯 , 동기들은 하나둘씩 학교를 떠났습니다. 저도 그렇게 전망 없는 학교를 떠나 공장이나 알바를 다니며 나이를





감사합니다. 저는 제가 나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저의 힘듬으로 인해서 전처를 이혼녀로 만들었고 지금의 가정을 정상적이지 않은 가정으로 꾸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죽지않기 위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지병이 있고 현실이 힘들어서 우울증이 오고 빚쟁이들의 등살에 전화번호를 수시로 바꾸고 제 이름으로 주민등록까지 말소가 되었지만 그래도 살기위해서 발버둥 칩니다. 아내도 용기를 내서 다시 또





일을 하기 시작하였고 , 집에 보탬이 되도록 월급 대부분을 집안의 빚을 갚는데 사용했습니다 . 여동생도 시집을 가기 위해 모았던 적금을 깨고 집안을 도와 조금씩 빚을 갚아갔습니다 . 그렇게 집안이 괜찮아질 때쯤 , 엄마는 저에게 ‘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공무원공부를 해보는게 어떻겠냐 ’ 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 언제까지 변변찮은 직장을 다닐 수 없는 노릇인지라 저도 어느 정도 고민하고 있는 부분 이였기에 고심을 하였습니다 . 며칠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마침내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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